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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디자이너 김성구

    뮤지션 김사월의 앨범 커버 디자이너 김성구 “디자인 자체보다는 디자인으로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좋다”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1년 08월 23일

    그래픽 디자이너 김성구

    스트리밍 또는 음반으로 음악을 듣는 행위는 청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각, 즉 커버 디자인을 ‘보는’ 행위가 수반된다.(음반의 경우라면 만지고 소장하는 물성의 체험도 더해질 것이다.) 청취자는 지금 듣고 있는 음악에 커버 디자인에서 느껴진 정서를 포개볼 수도 있다. 이러한 감각 체험들의 포개기를 토대로, 청취자는 특정 음악(인)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김성구는 음악인 김사월의 작업을 많이 했다. 김성구 얘기를 하기 전에, 김사월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에디터가 김사월 음악을 찾아 듣게 된 건, 청각에 앞서 시각을 통해서였다.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의 알고리즘이 ‘한국 인디 뮤지션’이라는 키워드로 곡 추천을 해준 모양인데, 그 추천곡들 중 김사월이라는 가수의 한 곡을 재생했었다. 그게 김사월의 모든 앨범을 듣도록(안 듣고는 못 배기도록) 한 시작이었다.

    어떻게 그 시작이 가능했는가 하면, 역시 커버 디자인 때문이다. 가볍게 표현해서 ‘느낌 있는데?’ 하는 시각 인상의 선행으로 청각 경험이 촉발된 셈이다. 감각의 전이 단계가 이러했으니 당연히 디자이너의 존재가 궁금해질 수밖에. 에디터 입장에선 디자이너 김성구와의 인터뷰가 음악 듣는 행위의 연장이다. 이 인터뷰가 누군가(들)에게 계속 읽힌다면, 아마 또 다른 감각 체험이 연속될 것이다. 김사월의 음악에 입문한다거나 김성구의 디자인을 눈여겨본다거나. 어쩌면 디자이너는 무언가를 디자인함으로써 그 무언가로 인한 감각 체험의 ‘촉발력’을 키우는 사람인지 모르겠다. 물론 이 촉발력은 그 무언가(something)가 진짜 무언가(real thing)일 때만 성립되는 것이지만.
    김성구 사이트 ― sgkm.kr

    음악인 김사월의 앨범 재킷, 공연 포스터 작업을 여럿 진행하셨지요. 이 가수의 모습을 무대 이외의 영역(이를테면 예능 방송 프로그램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무대와 녹음실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이니까요. 그래서 일반 대중이 김사월이라는 아티스트의 ‘이미지’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 ‘디자인’은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경우도 디자인에 혹하여(!) 김사월의 음악에 입문했거든요.(그리고 지금은 팬이 되어 있네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작업자 입장에선 ‘혹시 내 디자인으로 인해 이 음악인의 본모습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이미지가 생성되진 않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라고요. 실제로는 어땠을까 궁금합니다. 작업을 진행하며 설정했던 디자인 전략이랄지, 혹은 방향성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김사월의 명확함이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음반을 낼 때 왜 이 제목이어야 하는지, 왜 이 곡들이 들어가야 하는지 혹은 제외되어야 하는지, 왜 이 순서로 배치되었는지, 이것들이 각자 혹은 함께 모였을 때 어떤 이야기를 담고/만들고 있는지에 대한 구조를 먼저 탄탄하게 설정하는 점이 감명 깊었어요.

    김사월은 협업자의 작업을 존중하고 열려 있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사실 자신의 ‘뚝심’이 디자이너, 사진가 등이 자신에게 터무니없는 것을 가져오지 않게 하는 거죠. 그래서 어떤 디자이너, 어떤 사진가와 작업해도 김사월의 이미지가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에디터님처럼 종종 커버 디자인을 보고 흥미가 생겨 김사월의 음악을 들었다, 라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계속 김사월을 듣게 하는 것은 결국 음악이 좋기 때문입니다. 김사월은 과장된 언어를 쓰지 않고 일상의 시공간을 통해 듣는 이의 공감대를 형성해요. 언뜻 외롭고 슬프게만 들릴 수도 있지만 잘 살펴보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찾게 해주죠.

    전시 〈사랑의 기술〉 포스터, 2020
    〈커피 사회〉의 ‘전시 속 전시’ 〈윈터 클럽〉 포스터, 2019

    ‘그래픽 디자이너 김성구’ 하면, 제 머릿속 연관 키워드는 ‘타이포그래피’입니다. 전시 〈윈터 클럽〉, 〈사랑의 기술〉, 〈유령팔〉 포스터 같은 작업들이 기억에 남더라고요. 특히 〈윈터 클럽〉 포스터는 집 안 거실에 디스플레이 해두고 싶을 만큼 강렬했습니다.(웃음)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자신만의 ‘론(論)’이 있나요?

    언급하신 작업 중 예를 들자면, 〈윈터 클럽〉은 타이포테크(Typotheque)사의 ‘히스토리(History)’ 타입페이스를 사용했습니다. 조합형 서체이기 때문에 시리즈 중 어떤 서체는 아주 얇고, 어떤 것은 세리프 부분만 있어요. 이것들이 눈송이나 성에처럼 보여서 겨울 이미지에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윈터 클럽〉은 〈커피사회〉라는 전시 안의 전시여서 〈커피사회〉와는 조금 떨어져 있었어요. 외로워 보이는 사슴 이미지는 이런 구조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유령팔〉에서 제가 중요시했던 건 타이포그래피가 아니라 실제 전시 공간과 참여 작가들을 상징하는 가상의 3D 캐릭터들이었습니다. 현재 안은 원래 B안이었어요. A안의 전시 정보 타입 세팅은 B안에 비해 건조하고 차분했습니다. 어쨌든 형식적으로라도 B안이 필요했기 때문에 전시 제목도 유령팔이겠다, ‘설마 이게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마우스로 글자를 그려 넘긴 시안이었습니다.

    즉흥적으로 나온 디자인이고, 제가 글자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포스터, 전시장 시트, 도록의 글씨체가 다 다릅니다. 〈유령팔〉의 디자인이 종종 언급되는 이유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 그래픽이었으니, 디자인 자체보다는 ‘관’이 이런 디자인까지 포용할 수 있구나, 하는 놀라움이 컸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회화 작가 오용석 개인전 〈알로스테릭 진저〉 도록 『홀리, 사일런트, 알로스테릭』, 2020

    ‘김성구만의 색채’라고 해야 할까요, 여러 작업들에 걸쳐서 일관된 ‘결’ 같은 게 느껴집니다. 클라이언트에 따라, 의뢰 받은 과업에 따라 스타일의 진폭이 달라질 법도 한데, 각 작업들의 진폭 차이가 크게 느껴지진 않더라고요. 모든 작업들이 비슷해 보인다는 의미는 물론 아닙니다. 소설에 비유하자면, 작품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문체의 통일성이 있는 느낌이랄까요. 저는 이걸 이렇게 해석해봤습니다. 클라이언트와 소통할 때 작업자 본인의 스타일을 관철하는 노하우가 있지 않을까, 라고요. 이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웃음)

    제가 겁이 많고 안주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걸 수도 있어요.(웃음) 반성해야 할 점이죠. 클라이언트가 프로젝트에 제 스타일이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의뢰한 부분도 있고요. 여러 가지가 섞여 있긴 한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갑자기 포스트 인터넷, 뉴 미디어 관련 의뢰만 들어온 적이 있어요. 의뢰하시는 분들 모두가 〈유령팔〉을 언급하시면서 아주 강한 이미지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때 저는 무척 고요한 작업을 하고 싶었거든요.(웃음) 그런 부분을 미디어 아티스트 오용석의 작품집 『홀리, 사일런트, 알로스테릭』을 작업하면서 해소한 것 같네요. 기획부터 교정·교열까지 개입한 작업이기도 합니다.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에 대해 답변하자면,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저는 클라이언트를 사무적으로 대하진 않습니다. 일부러는 아니고, 그냥 제 기질이 그래요. 클라이언트와 결이 잘 맞으면 회의에서 일 얘기는 거의 안 하고 수다만 떨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고요.(웃음) 클라이언트의 고민을 듣는 게 좋아요. 듣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이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진심’이란 단어가 조금 부담스럽다고 느껴지는데 딱히 대체할 단어가 생각이 나지 않네요. 하여튼, 그게 저에게 힘이 되기도 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저도 시안이 풀리지 않으면 혼자 끙끙거리지 않고 클라이언트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시안이 거절당하면··· 가끔 감정에 호소하기도 하고요.

    프로파간다 출판사가 2011년 출간한 『자율과 유행 2: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젊은 얼굴들』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그 책에 “학교에 다니면서 배우거나 깨우친 필수적(으로 보이는) 과정이 극히 유효하면서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셨더라고요. 이 말에 대한 ‘10년 후 버전’의 부연 설명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돈 버는 거 힘들다”라는 말을 좀 멋지게 표현하고 싶었나 봅니다.(웃음) 당연하게도 실전은 변수와 돌발 상황이 많잖아요. 설득과 제안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제가 적절한 결과물을 내지 못할 때도 있고요. 당시 너무 어려서 실무 능력은 부족한데 무척 오만했습니다. 일하는 과정에 대한 순진한 믿음도 있었고요.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필요 이상으로 좌절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은 무척 신기해서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았어요.

    음악인에겐 음악이, 게임 개발자에겐 게임이, 시인에겐 시가, 플래너에겐 플랜이 ‘표현 수단’이잖아요. 그래픽 디자이너 김성구가 그래픽 디자인으로 표현하고 싶은 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야망 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그래픽 디자인 자체보다는 이를 통해 흥미로운 작업을 접하고,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이 좋습니다.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2년째 진행 중인 인터뷰 시리즈가 있습니다. 「인터뷰 애프터뷰(interVIEW afterVIEW)」라는 타이틀인데요. 과거 인터뷰이를 수 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나보는 코너입니다. 5년 후 그래픽 디자이너 김성구와 재회한다는 가정 하에 여쭤볼게요. 그때의 자신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제가 사랑하는 것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니면 그것들이 제 주변에 더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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