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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디오 ‘빵승’ 한승연

    음반 레이블 ‘안테나’ 인하우스 디자이너에서 ‘스튜디오 빵승’ 한승연으로


    인터뷰. 임재훈

    발행일. 2021년 10월 13일

    스튜디오 ‘빵승’ 한승연

    타 매체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인터뷰이 섭외 첫 단계는 대개 ‘눈팅’이다. 디자이너 혹은 스튜디오의 사이트와 소셜미디어를 수시로 때때로 즐겨 찾는 행위 말이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유명한 최욱, 이라는 개그맨이 고백하길, 게스트(주로 정치인) 인터뷰 때 가장 두려운 순간은 ‘궁금한 게 없을 때’라고 한다. 디자인 매체의 에디터/인터뷰어도 고개를 주억이게 하는 말이다. 디자이너들에게 궁금한 게 없다면 인터뷰 콘텐츠는 생성되지 못한다. 설사 생성되더라도 하나 마나 한 문답들의 지루한 나열이 될 개연율이 높다. 그래서 연면히 디자이너들을 눈팅하고, 기꺼이 따른다(to become a follower).

    그래픽 디자이너 한승연은 음반 레이블 ‘안테나’의 인하우스 디자이너로 일하다 독립했다. 2020년 1월 스튜디오 ‘빵승’을 오픈했고, 이제 운영 2년째를 맞고 있다. 에디터는 스튜디오 사이트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승연과 빵승의 활동을 눈팅만 해오고 있었다. 독립 전의 근무처가 워낙 유명한 회사인 데다 스타 뮤지션들과의 협업 이력이 많은 디자이너라서, 에디터는 한승연을 인터뷰하기 두려워했던 것 같다. 인터뷰 섭외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궁금한 게 없는데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인스타그램에 전체 공개로 펼쳐지는 한승연과 빵승의 피드와 스토리는 완성형인 것처럼 보였다. 규모 있는 클라이언트, 적잖은 작업량, 꾸준한 업데이트. 이 디자이너는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잘 만들어나가고 있다, 라고 느낀 것이다. 물음표보다는 느낌표에 가까운 성실한 작업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던 중에 별안간 궁금한 것들이 생겼다. 지속적 눈팅의 효과일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마치고 나니, 한승연과 빵승이 다시 또 궁금하다. 그러니까, 조금은 가까워진 기분.

    제가 ‘빵승’을 알게 된 계기는 뮤지션 정재형의 앨범 〈Avec Piano〉였어요. 많은 분들이 그러실 텐데, 저도 좋아하는 음반의 디자인 정보를 검색해보거든요. 그러다 앨범 재킷 디자인을 ‘빵승’이라는 스튜디오가 작업했다는 걸 알았어요. 스튜디오 사이트 ‘눈팅’만 하다가 이렇게 인터뷰로 뵙게 됐네요.
    ‘안테나’에서 근무하다 독립하신 걸로 압니다. 이런 경력답게 우리나라 음악인들의 음반, 굿즈 작업들을 상당수 진행하셨습니다. 안테나 소속인 정재형·정승환·권진아를 포함해서 허각, 마마무 솔라 등 여러 뮤지션들과 작업을 하셨던데요. ‘국내 음악 씬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라는 정체성은 저 같은 제삼자의 눈엔 퍽 화려해 보이거든요. 이런 화려함(이 아닐지도 모르지만)을 등지고 독립을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재직하는 동안 마음이 맞는 팀, 협업자들과 함께해서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다른 분야의 디자인 산출물보다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고, 또 아티스트 함께 일하는 특성 때문에 화려하게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해야 할 업무는 타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견을 조율하고 다양한 변수에 대응하고 프로젝트를 잘 성사시킬 수 있게끔 그 안에서 모두가 치열하게 일하고 있어요. 업계 특성상 빠른 일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많은 경험을 했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5년 정도 일하다 보니 조금은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디자인도 하면서 그림도 그리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 대한 갈증이 생겼고, 계기가 마련되었을 때 독립을 했습니다. 지금은 앨범 아트워크뿐 아니라 브랜딩, 인쇄 매체, 일러스트레이션 등 폭넓은 영역으로 작업을 확장하면서 원했던 일들을 실천하고 있어요.

    말이 나온 김에 스튜디오 빵승에 대해 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일러스트레이션 기반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정도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만, 뭔가 더 디테일한 아이덴티티가 있을 것 같아요.

    빵승을 시작할 때 다른 스튜디오와 어떻게 차별점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평소 개인 작업으로 드로잉을 해왔었는데, 그 드로잉들이 저랑 닮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이 드로잉을 보면서 나를 떠올린다면 이것이 나만의 차별점 아닐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드로잉을 디자인 작업 전반에 활용하고 영향을 미치도록 했어요. 그렇다 보니 현재 스튜디오 빵승의 아이덴티티로까지 연결된 것 같습니다.

    빵승을 대표하는 키워드 하나만 꼽아보라면, 저는 ‘컬러’를 고르고 싶어요. 작업의 종류나 장르를 불문하고 배색이 참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전! 진짜어른 원정대』, 허각 10주년 기념 앨범 〈Hello〉 커버, 권진아 정규 2집 앨범 〈나의 모양〉 커버 같은 작업들이 그랬어요. 컬러 배합 과정이나 인쇄 감리 때 정말 공을 많이 들일 것 같아요. 실제로는 어떠세요? 좋은 배색을 위한 나름의 프로세스가 있나요?

    작업을 진행할 때 주어진 방향과 콘텐츠에 따라 다양한 컬러 팔레트를 만들고 실험을 하는 편이에요. 『도전! 진짜어른 원정대』는 청년 1인 가구의 건전한 식생활 능력 향상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타깃이 쉽고 즐겁게 볼 수 있도록 청년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과 트렌드로 설득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어요. 식생활 정보 학습과 인증을 마치 챌린지처럼 느끼게 만드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라는 방향이 그려졌습니다. 레트로한 컬러들을 키 컬러로 사용하고, 글이 많지 않아도 설득되도록 일러스트레이션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Hello〉는 허각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한 스페셜 앨범이에요. 역대 히트곡을 재조명하고 새로운 곡을 더해 발매되었습니다. 그간의 시간을 추억하는 ‘선물’같은 앨범이어야 했어요. 내지에 아티스트와 팬들만 알수 있는 포인트를 넣는 방향이 정해졌고, 10년 바이오그래피의 모든 뮤직비디오 영상 및 재킷을 찾아 그 순간순간을 떠올리게 할 만한 오브제들을 수집하고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재구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내지에 들어갈 사진의 분위기를 해하지 않으면서 따뜻한 정서를 연출할 수 있도록 파스텔 톤으로 여러 실험을 해본 뒤 가장 어울리는 배합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이렇게 의도한 컬러 톤이 실물 인쇄물에서도 온전히 구현되도록 이틀간 감리를 보면서 인쇄소 기장님을 괴롭혔어요.(웃음) 〈Hello〉 발매 후에, 함께 일했던 담당자 분으로부터 “허각 씨가 역대급으로 마음에 들어한다”라는 소식도 전해 들었고, 이 앨범이 음원 차트 1위에 오르기도 했어요. 여러모로 아주 뿌듯했던 작업이었습니다.

    권진아의 〈나의 모양〉은 1집 이후 3년 만에 발표된 정규 앨범이었습니다.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고민이 짙게 배어 있었어요. 권진아라는 가수가 지난 3년간 음악적으로 한층 성숙했다는 게 느껴지는 앨범이었죠. 그래서, 아티스트의 다양한 면면을 입체적으로 시각화하는 비주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뜻하되 가볍지 않은 컬러들, 이들의 자연스러운 조화, 컬러 배합과 상호 작용하는 그래픽 형태를 구현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특히 컬러 및 후가공이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에 여러 종이로 샘플을 만들어 테스트했고 감리도 오래 봤어요. 오랫동안 협업한 인쇄소 ‘예인미술’의 배려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나의 모양〉은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앨범 아트워크도 큰 주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좋은 피드백으로 인해 감회가 남달랐던 작업이었습니다.

    빵승 사이트의 ABOUT 페이지가 인상적입니다. 그, 사진 때문에요. ‘작업실일까, 방일까’ 궁금하게 만드는 대문짝만 한 사진요. 실례 되는 말씀일지 모르지만, 대단히 근검절약하는 디자이너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그 사진 한 장으로 해보았습니다.(웃음)
    빵승의 사업자등록 원년이 2020년인 걸로 아는데요. 독립 후 이제 막 1년이 되어가는 셈입니다. 인스타그램을 봤는데, 국세청에서 날아온 고지서 사진도 있더라고요.(웃음) 그러고 보니 독립의 시점이 코로나19 시국과 겹칩니다. 큰 용기를 내야 했을 것 같은데요. 디자이너 한승연의 독립 첫 해를 간략히 회고해주실 수 있을까요?

    퇴사하고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코로나 19 시국이 닥치고 말았습니다. 앨범 발매나 공연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저도 영향을 받았어요. 제 선에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던 터라 더 당황스러웠던 것 같네요. 그래도 뭔가를 해보기로 결심했으니 일단은 도전장을 내밀었죠. 의도치 않게 개인 작업 시간이 넉넉해져서 다양한 시도들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작업물을 대외적으로 노출하고, 여러 군데에 메일도 보냈어요.

    차츰 시간이 흐르니 클라이언트 분들께서 관심 있게 봐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일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대면 행사가 사라진 만큼 비대면 행사가 생겨난 덕에,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비교적 순탄하게 스튜디오 빵승의 씨앗을 심으며 첫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목마르니··· 디자인 문의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좀 전의 질문에 이어서, 지난해 개인 프로젝트 중에 ‘Pieces’라는 작업을 언급해보고 싶습니다. 디자이너 한승연 자신의 과거 여행 사진들을 일러스트레이션 엽서로 표현한 작업이었죠.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 그리고 개인의 일상까지 흔들렸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개인들의 일상을 위로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 당시 저는 어디로든 떠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감에 빠졌습니다. 문득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는 일상 사진들을 보며 별것 아닌 일상도 훌륭한 여행이었단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별하진 않지만 힘을 주었던 일상의 조각들을 일러스트로 재구성하여 공유합니다.”
    ···라는 작업 노트에 저도 많이 공감했어요. 여행 좋아하는 사람한테 떠나지 못하는 것만큼 괴로운 게 또 없잖아요. 이 괴로움이 일상의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이걸 방지하려면 본인 스스로 대안을 찾아야 할텐데요. 혹시, 뭔가를 찾으셨나요?

    ‘무력감에 빠지지 말자.’ 이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은 되도록이면 정해둔 시간에만 하려고 합니다. 마음에 들 때까지 무작정 몰두하다 보면 야근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작업이 잘 풀리더라도 근무 시간 이후엔 과감히 작업 창 닫기.’ 이 연습을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일과 후는 개인 시간들로 채우고 있고요.

    지치지 않고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이 건강한지 살피려고 합니다. 독립을 한 시점에 요가를 시작했거든요. 드라마틱한 심신의 변화가 찾아왔다고 말할 순 없지만, 매트 위에서 움직이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그 시간들이 저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피지컬과 멘탈 다잡기 말고도, 그동안 하고 싶었던 개인 작업을 해보거나 관심 있는 아티스트의 작업들을 시뮬레이션 해보기도 합니다. 아미(A.R.M.Y)로서 언젠가 BTS의 앨범을 디자인해보는 게 큰 목표입니다! 연락 주세요.

    『타이포그래피 서울』이 첫 인터뷰이께 드리는 공식 마지막 질문이에요. 저희가 「인터뷰 애프터뷰(interVIEW afterVIEW)」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인터뷰이를 수 년 후 다시 만나보는 코너예요. 대략 5년 뒤에 두 번째 인터뷰를 요청드릴게요.(웃음) 그때쯤 디자이너 한승연은, 그리고 스튜디오 빵승은 어떤 모습이 되어 있길 바라세요?

    “스튜디오 빵승 알아? 거기 작업 잘하더라.”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스튜디오 빵승이 클라이언트들 마음속에 긍정적인 이름으로 각인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을 저 스스로 잘 지켜내면서 건강한 사업체로 살아남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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